3. 주요개념과 성격이론
1) 분석심리학의 기본가정
융의 분석심리학은 체험에 근거한 심리학 이론입니다. 정상인과 정신장애 환자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관찰하고 융 자신의 마음을 깊이 살펴본 경험을 토대로 엮은 이론입니다. 분석심리학은 개인적인 경험에 기반을 둔 이론으로서 객관적인 사실이나 절대적인 진리에 관해서 말고 있지는 않습니다. 분석심리학에서는 개인의 마음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실과 경험에 초점을 맞출 뿐 그것의 옳고 그름이나 좋고 나쁨을 판단하지 않습니다. 융에게 있어서 "관념은 그것이 존재하는 한 심리학적으로 진실이다." 분석심리학은 개인의 주관적 경험에 근거하여 그들의 마음을 이해하기 위해 적용할 수 있는 개념과 가설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융은 다음과 같은 언급을 통해서 자신의 학문적 입장과 삶에 대한 태도를 표현한 바 있습니다. "나의 생애는 무의식이 그 자신을 실현한 역사다. 무의식에 있는 모든 것은 사건이 되고 밖의 현상으로 나타나며, 인격 역시 그 무의식적인 조건에 따라 발전하며 스스로를 전체로서 체험하게 된다. 이러한 과정을 묘사함에 있어 나는 과학적인 언어를 사용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나는 나 자신을 과학의 문제로 경험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내면적인 관점에서 본 우리의 존재, 즉 인간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영원한 본질적인 속성은 오직 신화로서만 묘사될 수 있다. 신화는 보다 개성적이며, 과학보다 더울 정확하게 삶을 묘사한다. 과학은 평균개념을 가지고 작업을 하는데, 이것은 너무 일반적이어서 개인의 특유한 인생이 지니고 있는 주관적인 다양성을 올바르게 파악하기 어렵다."
분석심리학은 무의식의 존재와 영향력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정신분석 이론과 공통점을 지닙니다. 무의식을 의식화는 과정이 인간의 성숙에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는 점도 같습니다. 그러나 분석심리학은 무의식의 기능과 내용에 대해서 정신분석 이론과 다른 견해를 제시합니다. 프로이트는 무의식의 실체를 성욕과 같은 미숙하고 비합리적인 것으로 본 반면, 융은 미래에 나아갈 방향을 보여주는 신호라고 보았습니다.
융은 분석심리학은 인과론적인 관점보다는 목적론적인 관점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마음은 무의식을 좀 더 충반하게 발현하도록 기능하는 자기조절적인 체계입니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과거경험에 의해 밀려가기보다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존재입니다. 프로이트는 인간을 성욕과 같은 본능적 욕구에 의해 전전긍긍하며 떠밀려가는 존재라고 본 반면, 융은 무의식의 발현을 향해 나아가는 존재라고 보았습니다. 즉, 인간은 과거의 원인, 즉 '~ 때문에'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목적, 즉 '~을 위해서' 행동하라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융은 무의식이 전체성과 통일성을 이루며 진정한 자기를 발현하는 개성화 과정을 중시했습니다.
융은 인간의 마음을 환원론적으로 설명하는 것에 반대했습니다. 즉, 심리적인 것을 그 자체로 인정하고 이해하고자 했으며 뇌기능이나 다른 신체적 기능으로 설명하려는 어떠한 접근도 배격했습니다. 융은 인간의 삶과 마음을 이해하기 위해서 객관적으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인간을 이끌어나가는 어떤 정신적 존재, 즉 영혼을 가정합니다. 그에 따르면, 우리의 마음은 우리가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영혼에 의해서 움직입니다. 인간의 마음은 그러한 영혼을 받아들이는 그릇일 뿐입니다. 그러나 자아의 기능을 무시하는 것은 아닙니다. 자아의 결단 없이는 어떠한 무의식도 의식으로 동화될 수 없습니다. 자아는 우리 마음의 주인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마음을 관리하는 문지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융은 자아의식을 넘어서 광대한 정신세계를 지적함으로써 인간 정신의 전체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2) 분석심리학의 주요개념
융이 제시하는 성격이론의 핵심은 전체성입니다. 인간의 성격 전체를 융은 '영혼'이라고 불렀으며 이는 모든 사고, 감정, 행동, 의식과 무의식을 포함합니다. 융에 따르면, 인간은 여러 부분의 집합이 아니라 하나의 통합적 전체입니다. 인간은 전체성을 지니고 태어나며 분화와 통합을 반복하며 전체성을 발현해나갑니다. 인간이 일생을 통해서 추구해야 할 것은 타고난 전체성을 되도록 최대한으로, 분화된 것을 일관성 있고 조화롭게 발전시키는 것입니다. 뿔뿔이 흩어져 제멋대로 움직이며 갈등을 일으키는, 즉 여러 체계로 분화되어 분열된 성격은 건강하지 못한 성격입니다. 융은 자기를 성격의 중심이자 전체로 보았습니다.
(1) 의식, 개인 무의식 그리고 집단 무의식
융은 인간의 마음을 설명하면서 세 가지 수준의 마음, 즉 의식, 개인 무의식, 집단 무의식으로 구분했습니다. 의식은 개인이 유일하게 직접적으로 알 수 있는 부분이며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지속적으로 성장해갑니다. 개인은 타인과 구별되는 자신만의 고유한 존재로 성장하는데, 융은 이러한 과정을 개성화라고 지칭했습니다. 개성화의 목표는 개인이 가능한 한 완전하게 자신의 전체성을 인식하는 것, 즉 '자기의식의 확대'에 있습니다. 개성화는 무의식적인 내용을 의식으로 가져옴으로써 이룰 수 있습니다. 의식이 증가하면 개성화도 증대됩니다. 이러한 의식의 중심에는 자아가 존재합니다. 자아는 개인의 정체성과 자기가치감을 추구하며 자신과 타인과의 경계를 수립하여 구분하는 기능을 합니다. 뿐만 아니라 자아는 의식에 대한 문지기 역할을 하며 지각, 사고, 기억 그리고 감정이 의식될지 여부를 판단합니다. 인간은 의식의 중심에 있는 자아가 다양한 경험의 의식화를 허용하는 한계 내에서 개성화를 이룰 수 있습니다.
개인 무의식은 자아에 의해서 인정받지 못한 경험, 사고, 감정, 지각, 기억을 의미합니다. 개인 무의식에 저장된 내용들은 중요하지 않거나 현재의 삶과 무관하다고 여겨지는 것일 수 있습니다. 또는 개인적인 심리적 갈등, 미해결된 도덕적 문제, 정서적 불쾌감을 주는 생각들과 같이 여러 가지 이유로 억압된 것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개인 무의식은 꿈을 만들어내는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이러한 개인 무의식의 고통스러운 사고, 기억, 감정들이 어떤 주제를 중심으로 뭉치고 연합되어 심리적인 복합체를 이룰 수 있는데, 이를 콤플렉스라고 합니다.
콤플렉스라는 용어는 다른 학자들도 사용하고 있는데, 융이 단어연상검사를 통해 발견한 심리적 구조를 지칭하기 위해 처음 사용한 것입니다. 융의 콤플렉스가 다른 이론가의 콤플렉스와 구분되는 점은 원형적 핵을 강조한다는 점입니다. 융의 콤플렉스는 개인 무의식뿐만 아니라 집단 무의식의 요소를 지니고 있으며 아버지 콤플렉스, 어머니 콤플렉스, 구세주 콤플렉스, 순교자 콤플렉스와 같이 원형과 관련된 핵심적 주제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콤플렉스는 개인에게 의식되지 않은 채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콤플렉스를 의식화하는 것이 심리치료의 목표가 됩니다.
집단 무의식은 융의 이론이 다른 이론들과 가장 차별화 되는 개념입니다.
(2) 원형의 5가지 유형
원형은 내용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형태만 가지고 있습니다. 원형은 어떤 유형의 지각과 행동의 가능성을 나타내고 있을 뿐입니다. 원형들ㅇ느 집단 무의식 내에서 서로 별개의 구조를 이루고 있지만 결합을 하기도 합니다. 모든 원형들이 여러 가지로 결합되어 작용하기 때문에 개인의 성격이 각기 판이하게 다른 것입니다. 원형은 콤플렉스의 핵심을 이루며 원형이 중심이 되어 관련 있는 경험들을 끌어당겨 콤플렉스를 형성합니다. 원형은 무수하게 다양한 형태를 취할 수 있는 반면, 그 내용을 이루는 주요한 원형적 심상(예:영웅, 순교자, 어머니,악마)은 많지 않습니다. 이러한 심상을 중ㅅ미으로 경험이 계속 추가되어 충분한 힘을 얻게 되면 콤플렉스는 의식에 침입할 수 있게 됩니다. 원형이 의식에 떠올라 행동으로 표현되는 경우는 그 원형이 잘 발달한 콤플렉스의 중심이 되었을 때뿐입니다.
융은 다양한 원형 중에서 우리의 성격과 행동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5개의 원형을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그것은 페르소나, 아니마, 아니무스, 그림자 그리고 자기입니다.
페르소나는 라틴어로 '가면'이라는 뜻이며 개인이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을 드러내는 방식을 뜻합니다. 개인은 부모로서, 친구로서, 직장인으로서 다양한 역할을 하게 됩니다. 개인이 이러한 역할들을 수행하는 방식은 타인에게 어떻게 보이고 싶은지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자신에게 어떻게 행동하는 것을 원하는지에 따라서 달라집니다. 페르소나는 사람이 특정한 상황에서 자신의 감정, 사고, 행동을 조절해야 하는 것을 배우는데 유용합니다. 그러나 페르소나를 너무 중요하게 여기면, 개인은 진정한 자신으로부터 유리되어 형식적이고 피상적인 삶을 살게 될 뿐만 아니라 순수한 감정을 경험하기 어려워집니다.
아니마와 아니무스는 자신과 반대되는 성의 특성을 의미합니다. 페르소나가 외부로 드러난 모습이라면, 아니마와 아니무스는 무의식 속에 지니고 있는 이성의 속성을 뜻합니다. 아니마는 남성에게 있어서 다정함이나 감성적 정서와 같은 여성적인 부분을 나타냅니다. 아니무스는 여성에게 있어서 논리나 합리성과 같은 특징을 지니는 남성적인 부분을 말합니다. 남성과 여성이 모두 반대 성에 해당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은 남성과 여성이 남성호르몬과 여성호르몬 모두를 분비한다는 생물학적인 사실로도 지지됩니다. 융은 조화로운 성격을 지닐 수 있도록 남성은 아니마를, 여성은 아니무스를 무의식 속에서 이끌어내어 표현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으면 미성숙하고 틀에 박힌 남성상이나 여성상에 갇힐 위험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림자는 개인이 자신의 성격이라고 의식적으로 인식하는 것과 반대되는 특성을 뜻합니다. '등잔불 밑이 어둡다'는 말이 있듯이, 그림자는 자아의 어두운 부분, 즉 의식되지 않은 자아의 분신을 의미합니다. 그림자는 개인이 의식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성적이고 동물적이며 공격적인 충동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림자는 어떤 면에서 프로이트가 말하는 원초아와 유사합니다. 그림자는 잠재적으로 가장 위험하고 강력한 콤플렉스로서 자아가 이를 받아들여 화목하게 영혼 속에 편입시킬 수 있느냐의 여부가 심리적 건강에 매우 중요합니다. 그림자를 적절히 표현하는 것은 창조력, 활력, 영감의 원천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림자를 과도하게 억압하면, 개인은 자유로운 표현이 억제되어 진정한 자신으로부터 괴리될 뿐만 아니라 불안과 긴장 상태에 빠져들 수 있습니다. 그러한 개인들에게 있어서 치료의 목표는 그들의 그림자를 의식으로 가져와 인식하고 표현하도록 돕는 것입니다.
자기는 의식과 무의식을 포함한 성격 전체의 중심입니다. 자기는 성격을 구성하고 통합하는 에너지를 제공하는 일을 합니다. 자아가 의식의 중심이라면, 자기는 성격 전체의 중심이면서 동시에 역설적으로 성격 전체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개성화가 일어나지 않은 미숙한 사람들의 경우에는 자기가 무의식의 중심에 묻혀 있어서 다른 원형과 콤플렉스를 잘 인식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개인이 성숙해지고 개성화됨에 따라 자아와 자기의 관계가 밀착되어 모든 성격 구조에 대한 의식이 확대됩니다. 융은 자기의 실현이 인간 삶에 있어서의 궁극적 목표라고 보았습니다. 개인이 자신의 성격 기능을 완전히 발현할 때, 자기 원형에 접촉하여 무의식의 내용들을 의식으로 더 많이 가져올 수 있습니다. 이를 윙해서는 무의식적 과정을 이해할 수 있는 꿈의 의미를 잘 파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원형은 내용을 지니지 않고 단지 형태만을 지닌 심리적 반응양식입니다. 그러한 원형의 내용을 구성하는 것이 바로 상징입니다. 원형은 꿈, 환상, 환영, 신화, 동화, 예술 등에서 나타나는 상징들을 통해서 표현될 수 있습니다. 융은 신화, 연금술, 인류학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한 연구를 통해서 중요한 원형들을 나타내는 상징들을 발견하였습니다. 상징은 정신의 표현이며, 인간성의 모든 면이 투영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상징의 구체적인 심상으로는 영웅, 순교자, 전사, 위대한 어머니, 현명한 노인, 악마, 사기꾼, 고통 받는 소녀 등이 있습니다. 융이 발견한 상징들 중에서 특히 중요한 것은 자기를 상징하는 만다라 입니다.
융이 제시한 개념들은 전체성을 지닌 인간의 마음을 이해하기 위한 수단적인 개념입니다. 이러한 개념들은 공간적으로 실체화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인간의 마음은 의식, 개인 무의식, 집단 무의식의 세가지 층으로 구분될 수 있습니다. 자아는 의식의 중심을 이루며, 자아에 의해 억압된 개인의 경험들이 바로 그 아래 개인 무의식에 그림자로 존재합니다. 페르소나는 자아가 사회적 장면에서 겉으로 드러난 모습입니다. 아니마와 아니무스는 좀 더 깊은 집단 무의식에 존재하며, 자기는 마음의 중심이자 마음 전체를 포함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