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존치료의 바탕이 되고 있는 실존주의 철학은 개인의 자유, 책임, 주관성을 중요하게 여기며 각자 고유성을 지니는 개인은 자신의 행동과 운명의 주인이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실존주의 철학은 세계대전의 비극을 경험하면서 인간의 이성, 역사의 발전, 신의 권능에 대한 회의에서 출발하였습니다. 실존주의 철학은 유한보다 무한, 개별보다는 보편, 시간보다는 영원을 추구하는 전통적인 이론적 철학의 추상성을 배격하고 인간 삶의 맥락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실천 지향적인 철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실존철학자들의 주장은 매우 다양하지만 모두 인간의 '실존'을 가장 주된 관심사로 삼았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닙니다. 실존의 어원은 'ex-sistere'로서 '도드라지다' '나타나다'라는 의미를 지니며 생성의 개념을 포함합니다. 실존의 의미는 본질과의 비교를 통해 좀 더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본질은 어떤 실체를 다른 것과 구별하게 만드는 보편적이고 불변적인 속성을 뜻합니다. 이에 반해, 실존은 한 실체가 지니는 특별하고 구체적인 속성으로서 그 실체가 세상과 관계 맺는 독특한 방식을 의미합니다.
전통적으로 철학은 보편타당한 법칙, 즉 진리를 추구해왔습니다. 그러나 Edmund Husserl은 우리가 아는 것은 우리가 경험하는 것 밖에 없다고 주장하면서 인식 주체를 떠나 객관적인 법칙을 추구하는 것에 반대했습니다. 우리가 자신과 세계에 대해서 알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우리의 의식과 경험 자체에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Husserl의 사상은 현상학을 통해서 실존철학이 태동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미쳤습니다. Jean Paul Sartre가 실존주의를 인본주의와 일맥상통한다고 주장한 것은 실존주의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철학이 인간 개인의 삶과 주관적 경험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실존적 심리치료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 주요 실존철학자로는 키에르케고르, 니체, 하이데거, 부버가 있습니다.
1. Kierkegaard
쇠렌 키에르케고르는 덴마크의 철학자로서 실존주의 철학의 창시자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그는 인간의 합리성을 강조하는 추상적인 헤겔의 철학을 비판하면서 인간 삶의 구체적인 현실에 관심을 지녔습니다. 키에르케고르는 순수한 객관성은 달성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바람직하지도 않으며 비도덕적이라고 주장하면서 인간은 자신만의 주관적 진리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고 강조하였습니다. 특히 그는 삶의 선택과 관련하여 개인이 느끼는 불안에 깊은 관심을 지니고 그 근원에 대하여 철학적으로 깊이 천착하였습니다. 그에 따르면, 우리의 삶은 본질적으로 불확실하며 매 순간의 선택과 관련하여 실존적인 불안이 존재합니다. 이러한 불안은 인간 존재의 기본조건이자 진실한 삶을 살게 하는 바탕입니다. 불안과 불확실성은 인간이 피할 수 없는 운명이며, 우리의 과제는 선택과 결단을 통해서 우리 자신의 삶을 창조하는 것입니다.
2. Nietzsche
프리드리히 니체는 독일의 철학자로서 종교나 도덕성과 같은 인습적 가치에 대해 강력한 비판과 의문을 제기하였습니다. 그는 진리의 객관성을 부정하였으며 삶의 확장적 에너지를 고갈시키는 모든 독단적 교리나 학설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면서 "신은 죽었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그는 또한 인간의 주관성을 강조하였으며 비합리성 역시 중요함을 역설하였습니다. 그에 따르면, 인간은 합리적 지성에 따라 행동하는 존재가 아니라 권력에의 의지에 휘둘리는 존재이며, 인간의 삶은 권력을 위한 투쟁입니다. 도덕은 지배자가 민중을 통제하는 수단이며, 사회는 세속적 가치를 강요함으로써 우리'가 가치로운 것에 대한 순수한 추구를 포기하도록 만듭니다. 이러한 '다수의 도덕'을 따르게 되면, 우리는 개체성을 발현하지 못하는 평범한 인간으로 전락하게 됩니다. 인간을 노예로 만드는 강요된 도덕에 허우적대지 않고 인간 본연의 모습을 되찾을 때 잠재된 창조성과 독창성이 발현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이상적인 사람이 바로 초인입니다. 니체는 초인으로 나아가는 세 단계를 비유적으로 제시했습니다. 그 첫째는 순종하는 낙타의 모습으로서 짐을 잔뜩 싣고 뜨거운 사막을 건너면서도 불평한마디 하지 않는 수동적인 삶입니다. 둘째 단계에서 낙타는 사자로 변합니다. 사자는 이빨을 드러내고 으르렁거릴 줄 하는 공격적이고 자유로운 존재이지만 고독하고 불안합니다. 마지막 단계에서는 사자는 어린아이로 변합니다. 아이는 언제나 해맑게 순수하며 기발하고 창조적입니다. 자유롭지만 고독하지 않으며 유연한 사고를 지닌 어린아이가 바로 초인입니다.
3. Heidegger
마르틴 하이데거는 현상학적인 실존주의 철학을 발전시킨 독일의 철학자이며 실존치료 발달에 가장 중요한 영향을 끼친 인물입니다. 그에 따르면, 인간은 육체를 가진 존재로서 그가 관여해본 적이 없는 세계로 선택의 여지없이 내던져져 그 세계에서 통용되는 삶의 논리와 문법을 배우며 그 세계의 일원으로 살 수밖에 없는 실존적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 처해 있는 인간 현존재는 세계-내-존재로서 관계 속에서 존재하며 언어를 통해 서로의 존재를 이해합니다. 또한 인간은 죽음을 향한 존재로서 자신의 죽음과 관계를 맺지 않고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또한 유한한 존재인 인간은 시간이라는 지평에서 이해될 수 있으며 "죽음에로 미리 가봄"을 통해서 자신만의 존재 가능성을 인식할 수 있습니다. 인간 현존재는 과거를 떠맡고 미래를 지향하며 그 가능성 아래에서 현재에 존재해 나가는 역사적 존재입니다. 탄생과 죽음 사이에서 일어나고 있는 개인의 존재적 생기가 곧 개인의 역사인 것입니다. 인간 현존재는 가능성의 존재일 뿐만 아니라 자신의 존재에 대한 책임을 지고 존재해야 합니다. 인간의 위대함은 자신의 상황을 떠맡아 거기로부터 자신의 최대 존재 가능성을 창조해 낼 수 있다는 점입니다.
4. Buber
마르틴 부저는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난 유태인 철학자로서 '나-너 관계'와 '나-그것 관계'의 구분을 중심으로 '대화의 철학'이라는 종교적 실존주의 철학을 제시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에 따르면, 인간의 실존은 만남, 즉 관계에 의해서 규정됩니다. '나-너'와 '나-그것'은 개인이 타인과 물체를 비롯한 모든 대상과 관계를 맺는 심리적 태도와 상호작용의 두 가지 양식, 즉 존재의 두 양식을 의미합니다. '나-너'는 두 존재가 순수하고 진실되게 만나는 상호적인 대화적 만남입니다. 이러한 만남은 관념에 의해서 조작되지 않으며 상대방이 객체화 되지도 않습니다. 반면에 '나-그것'의 관계에서는 상대방이 관념적 표상으로 대상화되어 존재하며 그 대상이 자신의 관심사에 어떻게 도움이 될 것인지의 측면에서 관계를 맺습니다. 이러한 관계는 사실상 자기중심적인 만남이며 일방적인 독백의 만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이러한 두 가지 관계양식을 오가는데 현대사회에서는 존재에 대한 분석적이고 물질적 관점이 확산되어 인간관계가 '나-그것'의 관계로 변질되고 있습니다. 상대방을 어떤 목적을 위한 대상으로 여기지 않으며 관계가 충분히 상호적일 때, 우리는 대화 형식의 온전한 인간으로 존재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