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들러 심리치료의 개요
아들러 심리치료는 알프레트 아들러가 제창한 개인심리학에 근거한 심리치료를 의미합니다. 아들러는, 융과 마찬가지로, 한때 프로이트와 함께 정신분석 운동에 참여했으나 견해 차이로 그와 결별하고 자신만의 독자적인 이론체계인 개인심리학을 제창하였습니다. 그는, 프로이트나 융과 달리, 개인의 삶에 있어서 열등감의 보상과 공동체 의식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프로이트가 인간을 생물학적이고 결정론적인 관점에서 설명하고자 했다면, 아들러는 사회심리학적이고 목적론적인 관점에서 인간을 이해하고자 했습니다. 아들러에 따르면, 인간은 생물학적 성적 본능에 의해 움직이는 존재가 아니라 사회적인 관계 속에서 자신이 선택한 목표와 가치를 추구하는 존재입니다. 인간은 과거에 끌려가기보다 미래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존재인 것입니다. 인간은 원초아, 자아, 초자아라는 내적 요인들의 갈등에 의해서 움직이기보다 하나의 통합된 존재로서 자신의 목표를 향해 통일성 있게 살아갑니다. 아들러는 개인의 분리불가능성을 강조하여 자신의 이론을 '개인' 심리학이라고 명명하였습니다.
인간의 모든 행동에는 목적이 있습니다. 아들러는 인간 행동의 가장 기본적인 목적을 열등감의 극복이라고 보았습니다. 그에 따르면, 열등감을 극복하고 우월성을 추구하려는 동기는 선천적인 것입니다. 특히 어린 시절에 경험한 자신만의 열등감을 보상하기 위해서 미래의 가상적 목표, 즉 가상적인 자기상을 만들게 되는데, 이러한 목표는 인생을 이끄는 마음의 중심목표로 자리 잡게 됩니다. 개인은 자신의 목표를 추구하는 나름대로의 방식을 지니는데, 아들러는 이를 생활양식이라고 불렀습니다. 생활양식은 자신과 타인 그리고 세상에 대한 나름대로의 신념체계를 비롯하여 일상적인 생활을 이끌어나가는 감정과 행동방식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행동양식은 가족 경험 특히 형제 관계에 의해서 영향을 받게 됩니다. 아들러는 타인 또는 사회와의 연결감 속에서 타인의 행복을 위해 헌신하고 기여하려는 공동체 의식, 즉 사회적 관심을 정신건강의 핵심적 요인으로 여겼습니다.
아들러는 인간의 부적응 상태를 병적인 장애라기보다 삶의 목표 추구에 대한 낙심상태로 보았습니다. 개인 심리치료에서 치료자는 내담자가 추구하는 목표와 생활양식을 탐색하며 자기인식을 증가시킵니다. 아울러 열등감과 실망감을 극복하도록 도우면서 내담자의 목표나 생활방식을 건강한 것으로 변화시킵니다. 내담자는 자신이 추구하는 무의식적인 목적을 의식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자기이해가 깊어지고 건설적인 행동으로 전환할 수 있는 통찰을 얻게 됩니다. 또한 치료자는 내담자의 사회적 관심을 증가시키고 사회에 기여하는 구성원이 되도록 돕습니다. 개인 심리치료는 단기간에 시행되며 정보제공, 교육, 지도, 격려와 같은 교육적인 요소가 많은 치료법입니다.
아들러는 학술적인 연구보다 일반인을 위한 저술과 강연을 통해서 이해하기 쉬운 평범한 언어로 자신의 생각을 제시했습니다. 이런 점에서 개인심리학은 학문적인 체계성이나 정교함이 상대적으로 부족합니다. 그러나 아들러의 개인심리학은 아동지도, 청소년 교육, 자녀양육, 부모교육, 부부치료, 가족치료와 같은 여러 심리치료의 발달에 깊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2. 개인심리학의 발전과정
(1) 프로이트와의 만남
1902년에 아들러는 프로이트로부터 <비엔나 정신분석학회>의 모태가 된 수요일 저녁 모임에 초대를 받았습니다. 서로 알게 된 경위는 분명치 않으나 아들러는 프로이트의 초대를 받은 초창기 네 명의 의사 중 한 명이었습니다. 1907년에 아들러는 그의 유명한 논문인 '기관열등에 관한 연구'를 발표하여 프로이트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습니다. 그는 <비엔나 정신분석학회>에서 중추적 역할을 수행했으며 1910년에는 이 학회의 회장을 맡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아들러는 인간의 근본적 동기에 대해서 프로이트와 견해가 달랐습니다. 프로이트는 인간의 발달과정에서 성적 욕구를 중시한 반면, 아들러는 사회적 요인들을 강조했습니다. 급기야 프로이트는 아들러의 주장을 공허한 것이라고 비난했으며 과학적인 근거가 부족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러한 견해 차이를 경험하게 되면서 아들러는 마침내 프로이트와 결별하고 독자적인 이론체계를 모색하게 되었습니다.
(2) 독자적인 이론체계의 모색
아들러는 1911년에 프로이트와 결병하고 <비엔나 정신분석학회>를 떠나 자신의 추종자들과 함께 <자유정신분석학회>를 설립하며 독자적인 행보를 시작했습니다. 이 학회는 나중에 창설된 <개인심리학회>의 근간이 되었습니다.
1912년 아들러는 그의 두 번째 저서인 '신경증적 성격'을 발간하면서 자신의 독자적인 이론을 발전시켰습니다. 이 책에서 그는 개인의 행동을 생물학적· 외적 · 객관적 원인으로 설명하기보다 심리적 · 내적 · 주관적 원인으로 설명하려고 시도했습니다. 또한 인간의 근본적인 동기를 성적 추동이나 리비도가 아닌 권력 추구 또는 완전성의 추구로 대체하였습니다. 아들러는 개인심리학의 목표를 자신의 개념으로 인간 전체를 설명하고자 했던 프로이트와 달리 고유한 개인을 이해하는 것으로 삼았습니다.
(3) 사회적 참여의 강조
아들러는 제1차 세계대전 동안 오스트리아-헝가리 군대의 군의관으로 참전하였으며 이러한 전쟁경험은 인간 본성에 관한 그의 생각을 형성하는데 중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아들러는 병사들 사이의 연대감을 관찰하며 '공동체 의식'이 인간의 기본적 동기라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으며 인간은 사회적 참여를 통해 인생의 의미가 자기가치감을 추구한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생각은 열등감을 보상하기 위해 자신의 능력을 개발하고 사회적 참여를 통해서 인생의 의미를 추구한다는 개인심리학의 기반을 형성하게 되었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비엔나는 고아들로 가득찬 혼란의 도가니였습니다. 이때부터 아들러의 사회적 활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그는 비엔나의 여러 학교에 상담소를 개설하여 운영하면서 교사와 부모가 함께 참여하는 공개적인 토론모임을 가졌습니다. 이 모임에서는 아들러는 교사나 부모와 함께 문제아동에 대해서 자유롭게 토론하며 의견을 교환했습니다. 그런 다음 아들러는 아동과 직접 면담을 하고 나서 최종적으로 교사, 부모 또는 아동에게 문제해결을 위한 조언을 제시했습니다. 이것은 심리치료의 공개토론 모델로 알려져 있으며 공동체 정신건강 프로그램을 발달시키는 초석이 되었습니다. 아들러는 심리치료 활동에 소수의 전문가뿐만 아니라 다수의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었으며 공개토론 모델은 이러한 그의 믿음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4) 개인심리학의 보급과 사회적 활동
1920년대부터 아들러는 강연활동을 통해서 유럽과 미국에 개인심리학을 보급하며 심리치료와 예방적 활동을 강조했습니다. 또한 여러 곳에 아동지도 클리닉을 개설했으며 아동교육에 깊은 관심을 보이며 활발한 사회적 활동을 펼쳤습니다. 성인 환자의 경우, 그의 치료는 환자가 나타내는 증상에 숨겨져 있는 목적을 발견하고 실천하도록 돕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었습니다. 이 시기에 그는 저명한 심리치료자로서 명성을 얻게 되었으며 1927년에 발간한 '개인심리학의 실제와 이론'과 '인간 이해'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주목을 받았습니다. 이러한 저술과 강연을 통해서 열등감 콤플렉스, 출생 순서, 공동체 의식과 같은 개인심리학의 주요한 개념들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아들러가 사망한 후에 개인심리학을 발전시킨 주요한 인물은 Rudolf Dreikurs 입니다. Dreikurs는 비엔나에서 아들러의 가르침을 받고 함께 활동했던 정신의학자이자 교육자로서 개인심리학이 미국에서 아동교육에 활용되도록 하는데 커다란 공헌을 했습니다. 그에 따르면, 아동의 문제행동은 사회적 집단에 대한 소속감과 결여에서 비롯된 것으로서 네 가지의 잘못된 목표, 즉 부적절한 관심, 권력, 복수, 회피에 의한 것입니다. 최선의 치료방법은 처벌이나 보상에 의하기보다 아동에게 협력적인 행동을 가르쳐서 가정이나 학교에서 자신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는 시카고에 아동보호센터를 설립하고 공개토론 모델에 따른 가족치료를 실시하였으며 민주적인 가족관계를 강조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