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인간중심치료의 실제
1) 치료의 진행과정
일반적으로 인간중심치료자들은 내담자를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며 중·장기치료를 지향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치료자의 효과적인 노력을 통해서 신속하게 내담자의 치료적 변화가 일어나면, 6~15회 정도의 단기치료로 내담자의 문제가 해결될 수도 있습니다. 인간중심치료에서는 내담자가 치료의 기간과 종결을 결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인간중심치료는 치료적 관계를 중시하기 때문에 치료자가 해야 할 과정을 세분화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그러나 로저스는 내담자가 자신의 경험에 개방적이지 못한 채 자신을 인식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경험에 대한 개방성이 증가하여 자기 인식과 긍정적인 자기 존중감의 상태에 이르는 치료적 과정을 일곱 단계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단계의 일부는 서로 구분하기 어렵고 치료적 성장의 요소들이 뒤섞여 있기도 합니다.
1단계 : 심리치료를 받기 위해서 찾아왔지만 내담자는 자신의 경험을 적극적으로 탐색할 의향을 지니고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치료자에 대해서도 신뢰감이 부족한 상태입니다. 이 단계에서는 의사소통이 피상적입니다. 내담자는 치료자의 물음에 대해서 소극적으로 대답하며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자발적으로 하지 않습니다. 친밀하게 터놓고 대화하는 것이 위험한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2단계 : 내담자는 치료자가 자신을 존중하며 수용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면서 자신의 경험을 조금씩 드러내기 시작합니다. 치료자가 위협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인식하면서 가끔씩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아직은 자신의 감정을 과거의 객관적인 경험으로 묘사할 뿐입니다. 자신의 문제나 갈등을 좀 더 구체적으로 호소하지만 그 이유를 다른 사람의 탓으로 돌리려는 모습을 나타냅니다.
3단계 : 내담자가 점차 긴장감을 누그러뜨리고 계속 자신이 있는 그대로 수용되고 있다고 느끼게 되면, 좀 더 많은 감정들과 사적인 경험들을 표현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표현은 '지금-여기'에서 느끼는 즉시적 경험에 대한 것이 아니라 자기와 관련된 경험들을 객관적인 관점에서 기술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생각과 감정에 대해서 경직된 태도를 나타내지만 때때로 그 타당성에 대해서 스스로 의문을 제기하기도 합니다. 자신이 겪고 있는 문제가 외부적 요인보다 오히려 자신의 내부에 있음을 인정하기 시작합니다.
4단계 : 내담자는 3단계에서 자신의 여러 경험을 탐색하면서 여전히 자신이 있는 그대로 수용되며 존중되고 있다고 느낄 때, 자신의 경험에 대해서 좀 더 자유롭고 개방적인 태도를 나타내게 됩니다. 전에는 의식하기를 부인했던 감정들을 자각하면서 표현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아직은 이러한 표현에 두려움을 느낍니다. 아울러 자신이 겪고 있는 문제가 결국 자신에 의한 것이라는 책임의식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이 단계에서는 자신의 강렬한 감정들을 정면으로 직면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솔직하게 표현하지 못합니다.
5단계 : 내담자가 여전히 치료자로부터 있는 그대로 공감적으로 수용되고 있다고 느끼면, 내담자의 유기체적 유동성이 증가하면서 자신의 내면적 감정들을 있는 그대로 느끼며 수용하게 됩니다. 전에는 부인했던 감정들이 이제는 약간의 두려움이 존재하지만 의식 속으로 흘러들어 자신의 경험으로 자각됩니다. 내담자는 자신의 경험과 일치하는 '진정한 나'가 되고자 하는 바람을 지니게 됩니다. 아울러 내담자는 자신이 겪고 있는 문제들에 대하여 자신에 책임이 있음을 인정합니다.
6단계 : 5단계를 거치면서 이제까지의 치료 단계와는 구별되는 극적인 단계로 발전합니다. 내담자는 전에 부인했던 감정들을 '지금-여기'에서 느끼는 즉각적인 현재의 경험으로 수용하게 됩니다. 아울러 이러한 감정들을 '지금-여기'에서 느끼는 생생한 경험으로 솔직하게 표현할 수 있게 됩니다. 자신의 경험을 방어적 태도 없이 수용하게 되면서 내담자는 '진정한 나'가 되는 감동적인 느낌을 갖게 됩니다. 자기 자신의 객관적인 평가대상으로 생각했던 과거와 달리 자신의 경험을 있는 그대로 생생하게 느끼고 표현하는 주체적 자기 감을 얻게 됩니다. 내담자는 자신의 문제에 대해서 주체적으로 대처하고 해결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게 됩니다.
7단계 : 이 단계에서는 치료자의 도움 없이도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자신감을 갖게 됩니다. 치료자와의 관계에서든 치료실 외부에서든 내담자는 자신의 감정을 즉시 그리고 충분히 느긋하게 경험할 수 있습니다. 내담자는 자신의 정서적 경험을 신뢰로운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이러한 정서적 경험은 선택과 행동의 중요한 근거가 됩니다. 따라서 자기와 유기체적 경험 간의 불일치성이 최소화됩니다. 그 결과, 내담자는 자신의 내면적 경험세계를 자유롭게 인식하면서 충분히 기능하는 사람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2) 치료자의 역할
인간중심치료에서 치료자의 역할은 내담자가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치료적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입니다. 치료자는 내담자를 특정한 방향으로 변화시키기 위해서 내담자를 조정하거나 통제하지 않습니다. 내담자를 진단하거나 치료계획과 전략을 짜지도 않습니다. 내담자의 과거를 캐묻거나 내담자의 행동을 해석하지도 않습니다. 또한 내담자의 생각을 평하가지 않으며 치료에 관한 어떤 것도 내담자 대신 결정하지 않습니다.
인간중심치료에서 치료자의 역할은 치료자 자신의 존재방식과 태도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로저스에 따르면, 내담자의 치료적 변화를 촉진하는 데에는 치료자의 지식, 이론, 기법보다 치료자의 태도가 더 중요합니다. 인간중심치료에서 치료자는 자기 자신을 치료 도구로 사용합니다. 이때 치료자라는 전문가의 역할에 빠져서 자신의 진실한 모습을 잃어버리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내담자의 성장과 내적 자원에 대한 치료자의 신뢰가 내담자의 치료적 변화를 만들어냅니다. 내담자에 대한 신뢰를 지니고 진실한 모습으로 내담자를 인간 대 인간으로 만나는 치료자의 역할은 특별한 역할 없이 있는 그대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인간중심치료에서 치료자의 역할은 내담자 곁에 존재하며 내담자의 현재 경험에 관심을 갖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치료자는 내담자와의 관계에서 진실해야 합니다. 치료자는 자신의 마음을 진솔하게 표현하면서 내담자의 존재 자체를 수용해줌으로써 변화를 위한 촉매제 역할을 합니다. 선입견을 가지고 내담자를 판단하려 하기보다 순간순간의 경험에 근거하여 내담자의 주관적 세계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치료자의 진실한 보살핌, 무조건적 수용과 존중, 공감적 이해를 경험하면서 내담자는 경직된 방어를 풀고 자신의 내면세계를 자유롭게 탐색하게 됩니다. 그 결과, 내담자는 자신과 세상에 대한 현실적인 이해 속에서 효과적으로 기능하게 됩니다.
내담자의 치료적 변화는 그가 치료자를 어떻게 지각하느냐에 의해 결정됩니다. 치료자가 진실한 태도로 자신을 존중하며 잘 이해해준다고 느낄 때, 내담자는 자신의 감정, 생각, 신념, 욕구, 행동을 비롯한 내면세계의 전 영역을 탐색할 수 있게 됩니다. 자신을 잘 수용해 주는 안전한 치료자 앞에서 내담자는 방어를 풀고 자신의 경험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치료가 진행되어 내담자가 자신의 경험을 좀 더 폭넓게 탐색하게 되면, 지금까지 자기 개념으로 수용하거나 통합할 수 없었던 공포, 불안, 죄책감, 수치심, 혐오감, 분노와 같은 부정적인 감정들을 자각하고 표현할 수 있게 됩니다. 부정적 감정과 혼란스러운 갈등을 덜 왜곡하고 더 잘 수용하면서 자신과 타인을 좀 더 정확하게 지각하고 이해하게 됨으로써 현실에 더 잘 대처할 수 있게 됩니다.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면 다른 사람의 기대에 덜 매달리게 되므로 좀 더 진실한 방식으로 행동하기 시작합니다. 이러한 변화를 경험한 내담자들은 다른 사람에게서 문제해결의 답을 구하지 않고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의 삶을 이끌어 나갈 수 있게 됩니다. 이들은 과거의 구속을 덜 받으며 좀 더 자유롭게 의사결정을 하고 창조적인 삶을 살게 됩니다. 내담자들은 그야말로 창살 없는 감옥 속에서 자신을 묶어 놓았던 수갑을 벗어던지는 것과 같은 자유로움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러한 자유로움 속에서 내담자는 더욱 심리적으로 성숙하게 되고 자기를 실현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