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인간중심치료의 평가
로저스의 가장 큰 공헌은 심리치료가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심어준 것입니다. 로저스는 정신분석 치료와 행동치료가 성행하던 시기에 긍정적 인간관계에 근거한 새로운 심리치료의 모델을 제시했습니다. 그는 심리치료가 문제해결을 위한 기법적인 전문활동이 아니라 인간 대 인간의 진정한 만남이 되어야 한다는 점을 일깨워 주었습니다. 또한 심리치료자는 자신의 관점에 따라 내담자를 조작하고 통제하는 전문가가 아니라 내담자의 잠재능력이 발현될 수 있는 치료적 분위기를 조성하는 촉매 자여야 한다는 점을 설득력 있게 제시했습니다. 치료적 변화를 위한 필요충분조건으로 세 가지의 핵심조건, 즉 진실성, 무조건적 존중, 공감적 이해를 제시한 것은 로저스의 가장 중요한 공헌입니다.
아울러 로저스는 인간이 실현 경향성이라는 성장 가능성을 지닌 긍정적 존재라는 인간관을 제시함으로써 치료자들로 하여금 내담자에 대한 관점을 긍적적으로 변화시켰습니다. 로저스에 따르면, 인간은 아무리 부적응인 삶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더라도 그 존재만으로도 가장 깊은 존중을 받을 가치가 있는 존재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소중한 가치가 있는 존재로서 심리치료에서 치료자와 내담자의 관계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로저스는 웅변으로 제시하였습니다.
또한 로저스는 심리치료의 신비성을 제거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는 심리치료가 비밀스러움과 신비스러움으로 악용되어서는 안 되며 가장 철저한 조사와 연구에 개방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러한 노력으로 일환으로 로저스는 치료회기와 전체 치료과정을 녹음하여 대화과정을 분석하는 방법을 제시하였습니다. 그는 자신이 시행한 100회 이상의 면담을 녹취하여 치료과정의 생생한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치료회기의 녹음을 통해서 심리치료의 신비성을 제거할 뿐만 아니라 치료자를 훈련시키기 위한 슈퍼비전 과정을 향상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습니다.
로저스가 제시한 치료자와 내담자 관계는 모든 심리치료 이론에 스며들어 영향을 미쳤습니다. 인본주의적이고 현상학적인 관점은 인간의 개성과 다양성에 대한 존중을 강조하며 다양한 치료적 접근에 반영되었습니다. 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한 인간중심치료는 심리치료뿐만 아니라 교육, 간호, 정치적 협상, 국제적 교류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쳤습니다. 로저스의 저서는 12개 언어로 번역되어 세계에 널리 알려져 있으며 그는 심리치료 분야의 지도자일 뿐만 아니라 평화중재자로도 여겨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중심치료는 심리치료 분야에 커다란 공헌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 한계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첫째, 인간중심치료는 전통적인 진단과 정신장애 분류체계의 유용성을 부정함으로써 진단과 평가가 필수적인 정신겅간 분야에서의 의사소통의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전통적인 진단과 분류체계는 치료자가 내담자의 문제를 명료하게 인식하고 치료의 방향을 정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그러나 인간중심치료는 모든 내담자의 문제를 지나치게 단순화 또는 일반화하여 이해하고 있습니다. 진단과 평가가 필수적인 정신건강 분야에서 취업하기를 원하거나 건강보험 처리를 희망하는 인간중심치료자들은 현실적인 곤란을 겪을 수 있습니다.
또한 인간중심치료는 그 치료효과가 그다지 크지 않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인간중심치료는 정신역동치료나 다른 통찰 지향적 치료보다는 더 효과적이었으나 체계적 둔감화나 행동치료보다는 효과가 작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보다 최근에 이루어진 여러 연구에서, 인간중심치료는 대기조건이나 위약조건보다 효과가 컸지만 인지행동치료보다는 효과가 작은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Weisz 등은 아동과 청소년에 대한 인간중심치료가 행동치료, 인지치료, 부모훈련, 사회기술개입보다 덜 효과적임을 보고 하고 있습니다.
인간중심치료는 다른 치료이론에 비해 개념이 상대적으로 적고 단순할 뿐만 아니라 복잡한 치료전략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초심자가 배우기 쉽다고 여겨질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인간중심치료는 초심자가 배우기 가장 어려운 접근일 수 있습니다. 우선, 인간중심치료에는 초심자들이 지침으로 삼을 만한 구체적이고 체계적인 지침이 거의 없습니다. 또한 인간중심치료는 초심자가 갖추기 어려운 인격적 조건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인간중심치료는 현대의 심리치료자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쳤습니다. Norcross와 Prochaska의 조사에 따르면, 미국의 심리치료자들은 자신에게 가장 강력한 영향을 미친 인물로 로저스를 꼽았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지금-여기' 있는 그대로 충분한 가치를 지니는 소중한 존재라는 점을 심리치료와 상담 분야에 일깨워준 사람이 바로 로저스 입니다. 인간중심치료는 치료자가 내담자를 어떠한 심리적 자세로 대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