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인지치료의 개요
인지치료는 아론 벡에 의해 개발된 치료법으로서 정신장애를 유발하는 인지적 요인을 정교하게 설명하고 효과적인 개입 방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인지치료는 REBT와 더불어 심리치료 분야에 인지의 중요성을 일깨워주었을 뿐만 아니라 행동치료가 지평을 넓혀 인지행동치료로 확장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였습니다.
벡은 1960년대에 정신분석과 행동치료로 잘 치료되지 않던 우울증에 대한 새로운 치료법으로 인지치료를 개발했습니다. 그는 우울증 환자의 사고 내용을 연구하면서 실패, 상실, 좌절과 같은 부정적인 내용이 많음을 발견하고 이러한 인지적 특성에 초점을 맞춘 치료 이론과 개입 방법을 개발하게 되었습니다. 우울증 환자들은 자기, 타인, 세상에 대해서 부정적인 생각을 지니는데, 이러한 생각은 잘 자각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생활사건을 접하면 자동으로 유발되기 때문에 자동적 사고라고 명명되었습니다. 벡에 따르면, 이러한 자동적 사고의 내용은 현실을 과장하거나 왜곡한 것으로 흑백논리, 과잉일반화, 개인화 등과 같은 다양한 인지적 오류가 개입합니다. 우울증을 유발하는 근원적인 인지적 요인은 부적응적 인지 도식으로 이러한 도식은 완벽주의적이고 당위적이며 비현실적인 역기능적 신념으로 구성됩니다.
우울증을 설명하기 위해 제시된 벡의 인지 이론은 다양한 정신장애를 이해할 수 있는 이론 체계를 제시함으로써 수많은 실증적 연구를 촉발하였습니다. 정신장애마다 각기 독특한 내용의 사고를 지닌다는 인지 내용-특수성 가설을 제시함으로써 다양한 정신장애를 설명할 수 있는 이론적인 정교성과 범위가 확장되었습니다. 벡의 인지 이론은 그 설명개념의 구체성과 정교함으로 인해서 정신병리를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이론적 기틀을 제공하였으며 실증적 연구를 통해서 지속적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인지치료는 이러한 인지이론에 근거하여 내담자를 이해하고 치료하는 단기적인 치료방법입니다. 인지치료는 인지의 변화에 초점을 맞추어 증상을 치료하는 적극적이고 구조화된 단기치료입니다. 치료자는 내담자와 협동적인 관계 속에서 그의 부정적 사고와 역기능적 신념을 찾아내어 그 타당성을 검토하고 보다 더 현실적이고 적응적인 인지로 변화시킵니다. 우울증의 경우, 인지치료는 약물치료와 비슷하거나 더 우수한 치료 효과를 나타내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습니다. 현재 인지치료는 불안장애, 성격장애, 섭식장애, 알코올 중독, 부부 문제를 위시한 거의 모든 정신장애의 주요한 치료 방법으로 확장되고 있습니다.
인지치료는 정신병리에 대한 과학적 연구의 이론적 토대를 제공했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정신장애를 효과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함으로써 심리치료 분야에 커다란 공헌을 하였습니다. 또한 인지치료는 세계적으로 400여 개에 달하는 다양한 심리치료 중에서도 가장 빠른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대표적인 치료법 중 하나입니다. 인지치료는 현대 심리치료의 주된 흐름을 이루고 있는 인지행동치료의 중추적 치료법으로서 마음 챙김을 비롯한 다양한 기법을 통합하며 발전하고 있습니다.
2. 인지치료의 발전과정
Beck은 환자를 개인적으로 치료하면서 얻게 된 경험을 통해 정신병리에 대한 새로운 이론을 발전시켜 나갔습니다. 그는 우울한 환자들이 생활사건을 부정적인 의미로 과장하거나 왜곡하는 부정적인 사고경향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이들은 그가 구체적인 질문을 하기까지 자신들의 부정적인 생각을 잘 자각하지 못했습니다. 쉽게 자각되지는 않지만 환자의 우울감에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이러한 생각을 벡은 '자동적 사고'라고 불렀습니다. 이와 같은 치료적 경험과 실험적 연구를 통해 그는 정신분석적 입장을 포기하고 새로운 치료적 접근을 모색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벡은 1955년에 개인적 구성개념 심리학에 관해 발표한 조지 켈리의 논문에서 커다란 영향을 받았습니다. 켈리는 개인이 지닌 구성개념은 현실에서 접하는 다양한 경험을 그에 맞도록 재구성할 뿐만 아니라 감정과 행동에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했습니다. 벡은 그를 따라서 초기에 '구성개념'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다가 나중에 '인지도식'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습니다. 1960년부터 1963년까지의 기간은 정신분석을 재검토하고 연구를 거듭하는 가운데 인지치료가 태동하는 중요한 시기가 되었습니다. 벡은 스스로를 나무숲을 헤치며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모험가라고 여겼으며 다른 사람의 평가에 연연하지 않는 독립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어서 정신분석적 입장을 지닌 사람들의 반대와 조롱을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그가 인지치료를 개발하게 된 또 다른 바탕은 내담자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을 잘 관찰하는 것이었습니다. 벡은 자신이 경험했던 혈액/상처 공포증, 발표불안, 버림받음에 대한 불안을 매우 객관적으로 재조명하면서 불안에 수반되는 인지적 과정을 이해하는 기회로 삼았습니다.
벡은 팬실베이니아 대학 종합병원에 우울증 클리닉을 개설하였으며 1961년에는 벡 우울척도(BDI)를 개발하였습니다. 1963년에 앨버트 앨리스는 우울증에 관한 벡의 논문을 읽고 공감하여 합리적 정서치료(RET)에 관한 자료를 보냈으며 그 이후로도 서면으로 서로 의견을 교환하며 진실한 관계를 유지하였습니다. 그들은 서로의 학문적 입장 차이를 존중하였고 독창적인 개인적 자질을 높이 평가하였습니다. 벡은 사람들이 지닌 신념을 찾아낼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된 것이 앨리스 덕분임을 인정했으며, 앨리스는 벡이 매우 끈기 있고 명쾌한 사유를 하는 사람으로서 강압적이지 않으면서도 탁월한 설득력을 지니고 있다고 높이 평가했습니다.
벡은 우울증 클리닉에서 수련생들에게 슈퍼비전과 강의를 하고 심리치료를 계속하면서 새로운 치료방법을 시도하였습니다. 당시 약물치료에 전기충격치료까지 받았지만 호전되지 않는 심각한 우울증 환자를 치료하는 데 실패를 거듭하던 중, 벡은 활동계획 세우기와 인지적 재구성과 같은 기법을 개발하여 적용하였습니다. 그 결과 놀랍게도 그 환자를 비롯하여 다른 여러 환자들도 증상이 적극적으로 호전되었습니다. 약물치료와 정신분석 치료가 고작이었던 당시에는 이처럼 단기적인 인지치료를 통해 성공을 거둔 성과가 매우 충격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벡은 1960년 초반부터 우울증에 관한 연구결과를 발표하기 시작했으며 1976년에 <인지치료와 정서장애>를 출간하고 1979년에는 <우울증의 인지치료>를 발간함으로써 인지치료가 널리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어서 1985년에는 <불안장애와 공포증:인지적 관점>,1990년에는 <성격장애의 인지치료> 그리고 1993년에는 <물질남용의 인지치료>를 출간하면서 인지치료의 영역을 확대해 나갔습니다. 벡의 인지치료는 처음에 정신분석치료자와 행동치료자 모두로부터 강력한 저항을 받았지만, 심리학계에 인지혁명이 확산되고 인지적 요인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서서히 입지를 확대해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Beck은 환자를 개인적으로 치료하면서 얻게 된 경험을 통해 정신병리에 대한 새로운 이론을 발전시켜 나갔습니다. 그는 우울한 환자들이 생활사건을 부정적인 의미로 과장하거나 왜곡하는 부정적인 사고 경향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이들은 그가 구체적인 질문을 하기까지 자신들의 부정적인 생각을 잘 자각하지 못했습니다. 쉽게 자각되지는 않지만 환자의 우울감에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이러한 생각을 벡은 '자동적 사고'라고 불렀습니다. 이와 같은 치료적 경험과 실험적 연구를 통해 그는 정신분석적 입장을 포기하고 새로운 치료적 접근을 모색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벡은 1955년에 개인적 구성개념 심리학에 관해 발표한 조지 켈리의 논문에서 커다란 영향을 받았습니다. 켈리는 개인이 지닌 구성개념은 현실에서 접하는 다양한 경험을 그에 맞도록 재구성할 뿐만 아니라 감정과 행동에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했습니다. 벡은 그를 따라서 초기에 '구성개념'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다가 나중에 '인지 도식'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습니다. 1960년부터 1963년까지의 기간은 정신분석을 재검토하고 연구를 거듭하는 가운데 인지치료가 태동하는 중요한 시기가 되었습니다. 벡은 스스로를 나무숲을 헤치며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모험가라고 여겼으며 다른 사람의 평가에 연연하지 않는 독립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어서 정신분석적 입장을 지닌 사람들의 반대와 조롱을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그가 인지치료를 개발하게 된 또 다른 바탕은 내담자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을 잘 관찰하는 것이었습니다. 벡은 자신이 경험했던 혈액/상처 공포증, 발표 불안, 버림받음에 대한 불안을 매우 객관적으로 재조명하면서 불안에 수반되는 인지적 과정을 이해하는 기회로 삼았습니다.
벡은 펜실베이니아 대학 종합병원에 우울증 클리닉을 개설하였으며 1961년에는 벡 우울척도(BDI)를 개발하였습니다. 1963년에 앨버트 앨리스는 우울증에 관한 벡의 논문을 읽고 공감하여 합리적 정서 치료(RET)에 관한 자료를 보냈으며 그 이후로도 서면으로 서로 의견을 교환하며 진실한 관계를 유지하였습니다. 그들은 서로의 학문적 입장 차이를 존중하였고 독창적인 개인적 자질을 높이 평가하였습니다. 벡은 사람들이 지닌 신념을 찾아낼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된 것이 앨리스 덕분임을 인정했으며, 앨리스는 벡이 매우 끈기 있고 명쾌한 사유를 하는 사람으로서 강압적이지 않으면서도 탁월한 설득력을 지니고 있다고 높이 평가했습니다.
벡은 우울증 클리닉에서 수련생들에게 슈퍼 비전과 강의를 하고 심리치료를 계속하면서 새로운 치료 방법을 시도하였습니다. 당시 약물치료에 전기충격 치료까지 받았지만 호전되지 않는 심각한 우울증 환자를 치료하는 데 실패를 거듭하던 중, 벡은 활동 계획 세우기와 인지적 재구성과 같은 기법을 개발하여 적용하였습니다. 그 결과 놀랍게도 그 환자를 비롯하여 다른 여러 환자들도 증상이 적극적으로 호전되었습니다. 약물치료와 정신분석 치료가 고작이었던 당시에는 이처럼 단기적인 인지치료를 통해 성공을 거둔 성과가 매우 충격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벡은 1960년 초반부터 우울증에 관한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 시작했으며 1976년에 <인지치료와 정서장애>를 출간하고 1979년에는 <우울증의 인지치료>를 발간함으로써 인지치료가 널리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어서 1985년에는 <불안장애와 공포증:인지적 관점>,1990년에는 <성격장애의 인지치료> 그리고 1993년에는 <물질 남용의 인지치료>를 출간하면서 인지치료의 영역을 확대해 나갔습니다. 벡의 인지치료는 처음에 정신분석 치료자와 행동치료자 모두로부터 강력한 저항을 받았지만, 심리학계에 인지 혁명이 확산하고 인지적 요인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서서히 입지를 확대해 나가기 시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