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성격의 인지모델
벡은 성격장애를 설명하면서 진화론과 정보처리모델을 적용한 성격이론을 제시하였습니다. 그에 따르면, 인간의 전형적인 성격 패턴은 인류의 진화과정에서 생존과 번식을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한 적응방략에서 기원합니다. 현대사회에 나타나는 성격장애는 원시시대의 적응방략이 과장되어 표현된 것으로서 정상적인 성격과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성격은 환경에 대한 적응방략으로서 정보처리방식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벡은 개인의 인지도식과 신념체계가 성격의 핵심을 이룬다고 보았습니다. 그에 따르면, 정보처리는 인지도식에 자리 잡고 있는 신념체계의 영향을 받게 되며 개인이 상황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를 결정합니다. 이처럼 개인의 인지, 정서 그리고 동기에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핵심적 구조가 바로 인지 도식이며 성격의 기본단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지도식은 대부분의 경우 생의 초기에 구축되기 시작합니다. 초기 아동기에 부모를 비롯한 중요한 인물과의 상호작용 경험은 자신과 세상에 대한 핵심신념을 형성하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합니다. 특히 발달과정에서 겪게 되는 충격적인 사건이나 외상경험은 개인의 인지도식과 신념체계의 형성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성격장애를 고착시키는 역기능적 신념은 개인의 유전적 소인과 더불어 타인이나 특수한 외상 사건으로 인한 부정적인 경험과의 상호작용에 의해서 생겨납니다. 인지 도식이 형성되면 그와 일치하는 정보에 선택적으로 주의를 기울이고 해석하여 반응함으로써 인지 도식이 더욱 강화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인지도식은 자기영속화 과정을 통해서 지속되고 강화되어 개인의 독특한 성격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개인이 나타내는 독특하고 일관된 반응패턴은 인지도식으로 설명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인지도식은 다양한 자극상황에서 개인으로 하여금 독특한 자동적 사고를 유발하게 하고 그 결과로 정서적·행동적 반응을 하도록 만들기 때문입니다.
개인이 지닌 매우 특수한 역기능적 인지 도식이 활성화되면, 정신병리 상태가 유발됩니다. 역기능적 인지 도식이 생활사건에 의해서 활성화되는 빈도나 범위에 따라서 일시적 증후군과 성격장애로 구분될 수 있습니다. 우울증이나 불안장애와 같이 일시적으로 증상이 나타나는 정신장애는 평소에 잠복하고 있던 역기능적 인지 도식이 특수한 상황에서 활성화된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성격장애는 역기능적 인지 도식이 다양한 생활사건에 의해 지속적으로 활성화되어 일상생활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4. 정신 병리 이론
벡에 따르면, 대부분의 정신장애는 정상적인 심리적 반응이 과장된 것입니다. 심리적 증상뿐만 아니라 그와 관련된 인지적 요인에 있어서도 정상적인 것과 병리적인 것은 연속선상의 차이에 의해서 구별될 수 있을 뿐입니다. 이를 정신병리의 연속성 가설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가설은 진화론적 관점에 근거한 것으로서 다양한 정신장애의 기능적 의미를 이해할 수 있게 해 줍니다. 즉, 정신장애는 적응적 행동이 부적절하게 과장되어 나타난 것이지만 특수한 상황에서는 더 적응적인 기능을 할 수도 있습니다.
1) 정신병리의 일반적 원인
인간은 외부세계와 상호작용하며 적응해나갑니다. 적응을 위해서는 외부세계를 정확하게 인식하고 그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정신병리는 개인이 현실을 정확하게 인식하지 못하고 과장하거나 왜곡할 때 생겨납니다. 즉, 현실을 정확하게 반영하지 못하는 왜곡된 인지를 지닐 때, 부적응적인 정신병리가 발생하게 됩니다.
벡에 따르면, 정신장애를 지닌 사람들은 생활사건의 의미를 부정적인 방향으로 왜곡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부정적일 뿐만 아니라 비현실적인 사고와 심상을 지니게 됩니다. 이러한 비현실적인 부정적 인지가 부적응적 증상과 정신장애를 유발하게 됩니다. 예컨대, 우울한 사람들은 자신의 경험을 부정적인 방향으로 과장함으로써 자신은 열등하고 무가치한 존재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정신병을 지닌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행동을 극단적으로 왜곡하여 자신을 미행하거나 살해하려 한다는 생각에 집착하는 피해망상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벡은 개인이 지니는 자동적 사고의 내용에 따라 유발되는 부적응적 증상이 다르다고 주장합니다. 즉, 정신장애의 유형은 자동적 사고의 주제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를 인지적 내용-특수성 가설이라고 합니다.
근본적으로 정신장애의 원인은 편향된 인지도식에 근거합니다. 정신장애를 지닌 사람들은 생활사건을 특정한 방향으로 해석하게 하는 인지도식을 지니고 있습니다. 예컨대, 불안장애를 지닌 사람들은 '위험'에 예민한 인지도식을 가지고 있어서 주변환경 속에 내재하는 위험 가능성을 과도하게 평가하는 반면, 우울한 사람들의 인지도식은 '상실'이나 '실패'라는 주제에 편향되어 자신의 경험을 비관적으로 평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러한 인지도식은 역기능적 신념의 형태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예컨대, 불안장애를 지닌 사람들은 "세상은 위험으로 가득 차 있다. 항상 조심하고 경계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치명적인 결과를 맞게 될 것이다."와 같은 신념을 지니는 경향이 있으며, 이러한 신념으로 인해 매사에 과민반응을 하게 되므로 항상 높은 수준의 불안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