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인지치료의 평가
벡의 가장 큰 이론적 공헌은 개인의 내면적 경험을 과학적 연구의 영역으로 다시 가져온 것입니다. 생물학적 추동에 근거한 정신분석의 무의식적 동기이론뿐만 아니라 내면적 경험을 배제한 행동주의의 학습이론 모두를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이론체계를 제시한 것입니다. 달리 말하면, 정신분석의 무의식적 결정론과 행동주의의 환경적 결정론을 넘어서 현상학적 결정론의 관점을 제시한 것입니다. 인간의 행동은 무의식이나 환경적 강화에 의해서 결정되기보다 자신과 세상을 어떻게 구성하여 인식하느냐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관점입니다.
벡은 지난 30년간 정신병리를 과학적으로 연구하여 이해하는 데 커다란 기여를 했습니다. 그는 실증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 다양한 개념과 체계적인 이론을 제시함으로써 수많은 연구를 촉발하였습니다. 벡의 인지이론은 현재 심리학의 영역에서 정신병리를 연구하는 주요한 패러다임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우울증 환자의 인지적 특성에 대한 연구에서 비롯된 벡의 인지이론은 불안장애, 성격장애, 섭식장애, 신체형 장애, 알코올 중독과 같은 다양한 장애를 설명하는 이론체계로 확장되고 있습니다.
인지치료는 우울증과 불안장애를 비롯한 다양한 정신장애에 대한 효과적인 치료방법으로 입증되었습니다. 28개의 치료효과 연구에 대한 메타분석과 58개의 연구를 검토한 메타분석에서는 인지치료의 효과가 항우울제 약물치료와 동등하거나 우월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인지치료는 우울증 외에도 공포증, 공황장애, 강박장애를 비롯한 여러 불안장애, 섭식장애, 자살행동, 약물중독, 만성통증, 부부 및 가족문제, 성격장애, 스트레스 관리 등의 다양한 영역에서 성공적인 효과를 거두고 있습니다.
벡은 심리치료를 탈신비화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그가 1979년에 동료들과 함께 발표한 <우울증의 인지치료>는 심리치료의 구체적인 과정을 최초로 공개한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벡은 치료과정을 구조화하여 공개함으로써 많은 치료자들이 인지치료를 습득하고 실시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습니다.
인지치료는 여러 가지 공헌에도 불구하고 이론과 실제의 측면에서 다양한 비판을 받았습니다. 이론적인 관점에서는 인지치료가 너무 유심론적이고 합리주의적이며 현대의 인지심리학에서 이루어진 연구결과와 괴리되어 있다고 비판되었습니다. 실제적인 측면에서는 인지치료가 너무 피상적이고 단순하며 감정을 다루지 않고 치료적 관계를 경시한다고 비판되었습니다.
인지치료가 당면하고 있는 중요한 문제점 중 하나는 인지치료의 효과를 유발하는 심리적 메커니즘이 명확하게 입증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인지치료의 효과는 많은 연구에서 이미 잘 입증되었지만, 자동적 사고와 역기능적 신념의 변화가 부적응적 감정과 행동의 변화를 유발하는지에 대한 실증적 증거는 아직 부족한 상태입니다.
정신분석치료자들은 인지치료가 내담자에게 지성화 또는 합리화라는 방어기제를 제공해주는 것일 뿐 내담자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을 치료하지 못한다고 비판합니다. 인지치료는 내담자에게 자신의 경험을 미화하고 정당화하는 합리적인 철학적 체계를 제공해 주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또한 인지치료는 적용대상에 한계를 지니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지능이나 학력이 낮고 심리적인 내성능력이 현저하게 부족한 내담자는 인지치료에 적절치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또한 급격한 위기상태에 있는 내담자나 정신병적 증상이나 심한 성격장애의 문제를 지닌 내담자에게는 인지치료의 적용에 신중을 기해야 합니다.
여러 가지 비판과 한계에도 불구하고, 인지치료는 현대의 치료자들에게 가장 많은 인기를 얻고 있는 치료방법입니다. 그 주된 이유는 다양한 심리치료 중에서 가장 체계적인 이론과 실증적인 지지근거를 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치료효과가 가장 잘 입증되어 있으며 비용과 시간의 측면에서 경제적이라는 점입니다. 인지치료가 매력 있는 또 다른 이유는 명쾌한 이론과 구체적인 치료방법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치료자를 훈련하고 양성하기가 상대적으로 수월하다는 점입니다. 인지치료는 현대 심리치료의 주된 흐름을 이루고 있는 인지행동치료의 중추적 치료법으로서 마음 챙김을 비롯한 다양한 기법을 통합하며 확장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