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정신장애의 ABC 모델
인간은 합리적인 사고를 하는 성향을 지니고 있지만 또한 비합리적인 사고를 하는 강력한 경향성도 지니고 있습니다. 개인의 비합리적 성향은 생물학적 또는 사회환경적 요인에 따라 각기 다르기 때문에 생활 속에서 고통과 불행을 느끼게 되는 정도도 사람마다 다릅니다.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과 병리적 사람들의 유일한 차이점은 비합리적 신념을 신뢰함으로써 스스로를 정서적으로 고통스럽게 만드는 빈도와 강도의 차이입니다.
심리적 장애가 유발되는 과정은 아래와 같이 설명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일상생활 속에서 다양한 사건들(A)을 경험합니다. 이러한 크고 작은 생활사건에는 긍정적인 것뿐만 아니라 부정적인 것들이 존재합니다. 합리적인 사고(rB)를 하는 사람은 설혹 부정적인 생활사건을 겪더라도 그에 적합한 부정적 정서를 경험하게 되며 적응적인 행동을 나타내게 됩니다. 반면에 비합리적 신념(iB)을 지닌 사람들은 생활사건의 의미를 부정적으로 과장하거나 왜곡함으로써 건강하지 못한 부정적 정서와 자기 파괴적인 행동(C)을 나타내게 됩니다. 특히 당위적인 요구를 지닌 사람들은 일상생활 속에서 많은 실망과 좌절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또한 다양한 생활사건의 의미를 비합리적 사고로 해석하게 되면 강렬한 부정적 정서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이처럼 심리적 장애가 부정적인 환경과 사건에 의해서 유발되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는 방식의 비합리성에 의해서 생겨난다는 것이 REBT의 기본적인 입장입니다.
실제의 현실 속에서 ABC 과정이 연쇄적으로 복잡하게 나타나게 됩니다. 엘리스는 개인이 처음에 경험하는 정서적 문제로 인해서 이차적인 정서적 문제가 유발되거나 파생될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ABC 모델에 따라 설명하면, 내담자가 최초로 경험한 결과적 정서와 행동이 새로운 선행 사건이 되어 또 다른 ABC 과정을 일으킨다는 것입니다. 즉, 이차적 문제는 '문제로 인한 문제' 혹은 '장애로 인한 장애'를 의미합니다. 예를 들면, 내담자들은 자신의 불안 증상으로 인해 더욱 우울하게 느끼며 이러한 우울감은 그들을 더욱 불안하게 만드는 악순환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내담자들이 이러한 연쇄적인 또는 악순환적인 과정에 의해서 심리적 문제를 악화시키는 경우가 흔합니다.
REBT에서는 심리적 장애가 유발되는 일반적인 과정을 제시하고 있을 뿐 특정한 장애(예:강박장애, 공포증, 섭식장애 등)의 원인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특정한 장애에 대한 치료 사례와 각각에 적용되는 기법들에 대해 많은 자료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벡의 인지치료 이론이 특정한 장애의 기저에 있는 역기능적 신념과 자동적 사고를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REBT는 심리적 장애 별로 특정한 내용의 비합리적 신념이 존재한다고 가정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핵심적인 비합리적 신념들이 다양한 장애를 일으키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5. 치료 이론
1) 치료의 목표와 원리
REBT의 전반적인 목표는 내담자가 정서적 고통과 자기 패배적인 행동을 줄여서 자신의 잠재 능력을 효율적으로 발휘하고 나아가 더 행복한 존재가 되도록 돕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치료자는 내담자가 합리적으로 사고함으로써 적절한 감정을 느끼고 행복한 삶의 목표를 달성하는 데 효과적으로 행동하도록 돕습니다. 즉, 내담자가 합리적인 인지, 정서, 행동을 나타내는 사람이 되도록 돕는 것입니다. REBT는 궁극적으로 내담자가 자신의 삶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비합리적 사고를 극복하고 인생에 대한 철학적 변화를 통해서 자신이 원하는 삶을 효율적으로 영위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REBT의 치료 원리는 간단하고 명료합니다. 내담자가 지닌 비합리적 신념을 찾아내어 논박함으로써 좀 더 합리적인 신념을 지니도록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이러한 치료 과정을 ABCDEF 모델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치료자는 내담자로 하여금 부정적 감정과 행동(C)을 경험하게 만드는 비합리적인 신념(B)을 찾아내어 논박(D:Disputing)함으로써 합리적인 신념에 근거한 효과적인 철학(E:Effective philosophy)을 갖게 하여 좀 더 적응적인 새로운 감정과 행동(F:new Feeling and behaviors)을 경험하도록 변화시킵니다.
ABCDEF 모델에 따른 치료 과정을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치료자는 내담자가 부적응 문제를 나타내는 심리적 과정을 ABC 모델에 따라 명료하게 이해합니다.
(A) 촉발 사건 : 첫 단계는 내담자에게 부정적 감정을 유발한 촉발 사건(A)을 포착하여 구체적으로 확인하는 것입니다.
(B) 신념 : 다음 단계는 촉발 사건에 대한 내담자의 신념(B)을 탐색하여 찾아내는 것입니다. 이러한 신념은 합리적인 것일 수도 있고 비합리적인 것일 수도 있습니다. 개인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일어나는 외부사건에 대해서는 선택권이 제한되어 있지만, 그러한 사건에 대한 신념에 대해서는 많은 선택권을 지니고 있습니다. 내담자의 비합리적 신념을 변화시키려고 노력하기 전에 치료자는 그러한 신념을 명료하게 확인하고 평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C) 결과 : C는 비합리적 신념의 결과로 나타난 부정적 감정과 행동을 뜻합니다. 촉발 사건은 그 자체로 부정적인 결과를 만들어낼 수도 있고 사건에 대한 비합리적 신념이 결과적 감정을 유발할 수도 있습니다. 신념이 비합리적인 경우 그 결과들은 건강하지 않은 감정과 자기 파괴적인 행동으로 나타나기 쉽습니다. 실제의 치료 과정은 내담자가 호소하는 부정적 감정(C)에서 출발하여 그러한 감정을 촉발한 사건(A)을 확인하고 그 사건과 부정적 감정을 중간에서 매개한 신념(B)을 찾아내는 순서로 진행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어떤 방식이든, 치료자는 내담자의 부적응 문제를 A-B-C 모델로 명료하게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특히 부적응 문제를 야기하는 비합리적 신념을 구체적으로 파악하여 그것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중요합니다.
(D) 논박하기 : REBT의 핵심은 논박을 통해서 내담자가 지니고 있는 신념의 합리성을 평가하고 비합리적인 신념을 합리적인 것으로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논박은 마치 철학자들이 토론을 하듯이 어떤 신념의 타당성을 다양한 관점에서 평가하는 대화 과정을 의미합니다.
(E) 효과적인 철학 : 치료자는 논박을 통해서 내담자가 비합리적인 신념을 포기하고 좀 더 합리적인 신념을 발견하도록 돕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치료자는 내담자가 자신의 삶을 적응적인 것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새로운 신념 세계, 즉 효과적인 철학을 형성하도록 돕습니다.
(F) 새로운 감정과 행동 : 내담자가 합리적인 신념을 발견하고 삶에 대한 효과적인 철학을 갖게 되면 새로운 감정과 행동을 나타내게 됩니다. 즉, 과거에는 부정적인 감정을 느꼈던 사건에 대해서 좀 더 적절하고 긍정적인 감정을 경험할 뿐만 아니라 효과적인 행동을 나타내게 됨으로써 내담자의 삶이 점차 적응적인 것으로 변화하게 됩니다.
ABCDEF 모델은 단순하고 직선적인 듯이 보이지만, 비합리적인 신념을 합리적인 것으로 변화시키는 과정은 상당히 도전적이며 복합적인 과정입니다. 이러한 변화를 위해서 치료자는 신중하게 선택된 치료 기법을 노련하게 적용해야 할 뿐만 아니라 내담자의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내담자가 자신의 비합리적 신념에 집착하며 변화에 저항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사람들은 변화라는 새로움의 낯선 불편감을 감수하기보다 익숙한 불쾌감의 편안함에 머무르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