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주요개념과 성격이론
심리치료는 예술인가 과학인가? 심리치료는 삶에 대한 인문학적인 이해 위에서 펼쳐지는 오묘하고 깊이 있는 예술적 작업이어야 하는가 아니면 인간에 대한 자연과학적 이해 위해서 진행되는 체계적이고 정밀한 과학적 작업이어야 하는가? 이러한 물음에 대한 견해에 따라 심리치료자의 이론적 입장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인간의 정신세계는 매우 복잡하고 미묘하며 다층적이어서 명료하게 설명하기가 어렵습니다. 심리치료자는 부적응 문제의 치료를 위해서 찾아온 내담자를 도와야 합니다. 이때 치료자가 당면하는 기본적 과제는 내담자의 부적응 문제를 이해하는 것입니다. 부적응 문제를 생성하고 지속시키는 심리적 요인과 과정을 이해할 수 있어야 치료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내담자의 문제를 어떤 관점에서 이해할 것인가?
정신장애를 주로 이해하고 치료하는 입장들은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구분될 수 있습니다. 그 하나는 다소 주관적이고 추상적이더라도 내담자의 부적응 문제를 그의 인생과 정신세계 전체의 맥락 속에서 폭넓게 이해하고 개입하려는 입장입니다. 다른 하나는 다소 설명 범위가 좁더라도 내담자의 부적응 문제에 초점을 맞추어 객관적이고 정밀하게 이해하고 치료하려는 입장입니다.
일반적으로 정신역동 치료자들이 전자의 입장을 취하는 반면, 행동 치료자들은 후자의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 정신역동 치료자들은 내담자의 과거 경험을 포함한 인생 전체뿐만 아니라 무의식의 정신세계를 고려하여 내담자의 문제를 이해하고 치료하고자 합니다. 따라서 이들의 설명개념은 추상적이고 모호할 뿐만 아니라 치료 과정도 비체계적이고 장기적이며 치료자의 주관성과 개성이 개입되는 예술적 요소를 지니게 됩니다.
반면에 행동 치료자들은 심리치료가 실증적인 연구 결과에 근거한 과학적 토대 위에서 시행되어야 한다는 신념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들은 비록 설명 범위가 좁더라도 내담자의 부적응 문제를 객관적이고 명료한 개념으로 이해할 뿐만 아니라 치료 과정도 치료 효과가 입증된 구체적인 기법을 통해 체계적이고 치밀하게 진행되는 과학적 작업이 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비유하자면, 행동 치료자들은 엉성한 골조물로 구성된 커다란 집을 짓기보다는 견고한 벽돌을 하나씩 차근차근 쌓아가는 집짓기를 선호하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행동치료는 탁월한 창시자 한 사람의 경험과 사유에 근거하기보다 많은 연구자와 치료자의 노력에 의한 집단지성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 행동치료의 기본가정
행동치료는 행동주의 심리학의 학문적 성과에 근거하고 있는 심리치료입니다. 행동주의는 심리학을 자연과학과 같이 엄밀한 과학으로 발전시켜야 한다는 신념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심리학은 정신분석 이론과 같이 개인 내부에서 일어나는 모호한 현상에 대한 연구를 지양하고 객관적으로 관찰되고 측정할 수 있는 행동만을 연구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행동주의에 따르면, 인간의 모든 행동은 환경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학습된 것입니다. 이러한 행동주의 심리학에 바탕을 두고 있는 행동치료는 인간 행동과 심리치료에 대한 몇 가지 가정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첫째, 개인의 특성은 관찰될 수 있는 구체적인 행동으로 분석되어 이해될 수 있습니다. 얼핏 보면 복잡해 보이는 인간의 삶도 상황마다 다양하게 나타나는 행동으로 구성됩니다. 개인의 성경은 내면적 특성에 의해 규정되기 보다 개인이 다양한 상황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독특한 행동 패턴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내담자의 부적응 문제도 관찰 가능한 문제행동의 집합체로 분석되어 이해될 수 있습니다.
둘째, 인간이 나타내는 대부분의 행동은 후천적으로 학습된 것입니다. 인간은 '빈 서판'과 같은 존재로서 잠재적인 가능성을 지니고 태어날 뿐 선천적으로 결정된 행동 패턴은 거의 없습니다. 대부분의 행동 패턴은 환경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후천적 경험을 통해 학습된 것입니다. 부적응적인 문제행동 역시 잘못된 후천적 학습에 의해 습득된 것입니다.
셋째, 행동치료의 주된 목표는 부적응적인 문제행동을 제거하거나 긍정적인 행동을 학습함으로써 내담자의 적응을 돕는 것입니다. 행동치료는 내담자의 과거 경험이나 무의식과 같은 내면적 요소의 변화보다 현재의 행동을 변화시키는데 초점을 맞춥니다. 행동 치료자에 따르면, 내담자를 고통스럽게 하고 부적응으로 몰아가는 문제행동을 제거하여 재발하지 않게 할 뿐만 아니라 현실적인 문제상황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긍정적인 행동을 습득시켜 내담자의 적응을 개선할 수 있다면, 충분히 성공적인 치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무의식적인 역동의 분석과 통찰 없이도 내담자의 문제행동이 효과적으로 개선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심리치료는 과학적 원리와 방법에 의해서 시행되어야 합니다. 심리치료는 치료자의 개인적 견해와 경험에 근거하기보다 과학적으로 밝혀진 원리에 의해서 내담자 문제를 이해하고 실증적으로 효과가 입증된 치료기법에 의해 시행되어야 합니다. 심리치료가 미신적이거나 신비주의적인 다양한 시술 행위와 구별되는 점은 과학적 원리와 방법에 근거한다는 점입니다.
2) 기본개념과 학습원리
행동주의적 심리학자들은 유기체가 새로운 행동을 학습하게 되는 원리와 과정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졌으며 수많은 실험적 연구를 통해서 다양한 학습 원리를 제시했습니다. 여기에서는 새로운 행동이 학습되는 주요한 원리인, 고전적 조건형성, 조작적 조건형성, 모방학습 과정을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1) 고전적 조건형성
러시아의 유명한 생리학자였던 이반 파블로프는 개의 타액 분비에 관한 실험을 하는 과정에서 특이한 현상을 발견했습니다. 개는 먹이를 보고 침 흘리는 것이 보통인데, 먹이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도 개가 침을 흘리는 일이 종종 발견되었던 것입니다. 이를 신기하게 여긴 파블로프가 그 이유를 조사해 본 결과, 정오를 알리는 성당의 종소리가 울린 후에 개에게 정기적으로 먹이를 주곤 했는데 개는 종소리만 듣고도 침을 흘리는 것이었습니다.
파블로프는 그림과 같은 실험 장치를 통해 개가 종소리에 침을 흘리게 된 과정을 확인하였습니다. 이러한 개에게 고기를 주면서 종소리를 함께 들려주는 일을 여러 번 반복한 결과, 개는 종소리를 듣고 침을 흘리는 반응을 습득하였습니다. 개가 종소리에 침을 흘리는 행동을 학습하게 된 과정을 다음과 같이 설명될 수 있습니다. 개는 고기를 주면 무조건 침을 흘립니다. 이 경우에 고기처럼 무조건 침을 흘리게 하는 자극을 무조건 자극이라고 하고, 이러한 자극에 대해서 자동으로 유발되는 반응을 무조건 반응이라고 합니다. 처음에는 침을 흘리게 하지 못했지만 고기와 함께 짝지어 제시됨으로써 개로 하여금 침 흘리는 반응이 나타나게 한 자극(종소리)을 조건 자극이라고 하며, 이러한 조건자극에 의해 유발된 반응을 조건 반응이라고 합니다. 고전적 조건형성은 무조건 자극과 조건 자극을 짝지어 반복적으로 제시하면 조건 자극만으로도 조건 반응이 유발될 수 있음을 뜻합니다. 이러한 학습 과정을 고전적 조건형성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종소리에 침을 흘리도록 학습된 개에게 종소리와 유사한 벨 소리를 들려 주어도 침을 흘립니다. 이처럼 조건자극과 유사한 여러 가지 자극에 대해서도 침을 흘리는 조건반응이 나타나는 현상을 자극 일반화라고 합니다. 반면에 손뼉 치는 소리를 들려주는 경우에는 개가 침을 흘리지 않습니다. 이처럼 조건자극과 현저하게 다른 자극에는 조건반응을 나타내지 않는 현상을 자극 변별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종소리와 손뼉 치는 소리를 짝지어 반복적으로 제시하면 개는 손뼉 치는 소리에도 침을 흘리게 됩니다. 이러한 경우를 이차적 조건형성이라고 하는데, 이처럼 새로운 자극들에 대하여 침을 흘리는 반응이 학습되는 과정을 고차적 조건형성이라고 합니다. 행동주의 심리학자들은 여러 실험을 통해 고전적 조건형성의 원리에 의해서 다양한 행동과 정서 반응이 학습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